7월 16일 오후 영암 찍고 나주 숙소로
가는 길에 잠깐 들리기로한
나주에 도착 뭐 볼것이 있겠어 조그만 동네 인데
하는 생각으로 살짝 들리기로한 나주
와 근데 볼것이 너무 많은 거야 사진 찍을 것도 많고
이곳에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던데
슬슬 들어 가는 입구 부터 완전 맘에 드는 거야
원래 나주는 읍성 형태였다고 한다.
전라도가 전주와 나주가 합친거라고
하니 나주의위상을 알수 있지?
고려. 조선시대에 행정구역인 목(牧)으로
관리되었는데 그중 하나란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2개의 목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20개의 목을 두어서
정3품인 목사를 파견 관리하였던 나주목인거지.
일단 동네에 들어 서자 마자 발견한 문
뭐여 내려서 보니
사적337호 영금문(서성문)이라고 되어 있더라
나주는 읍성이라서 4대문이 있었단다
동점문 북망문 서성문 남고문 이렇게
그중 서쪽문 서성문이란다.
편액은 영금문이라고 되어있었다고.
근데 복원의 향기가 솔솔 나던걸
동학혁명 당시 혁명군이 나주읍성을 여러번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혁명 대장이었던 전봉준이
나주목사와 협상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고
서성문 뒤 쪽으로 살살 걸어 가니
향교가 있더라 나주 향교.
향교 입구의 삼문. 근디 개방을 안하시나 보나.
그럼 한바퀴만 둘러 보지뭐.
담장너머 향교의 모습 원래
이렇게 숲이 었던거야 아님
출입을 안해서 이렇게 된거야? 알수 없음.
향교 담장을 따라서 쭉 걸어 보지뭐.
길끝에 비석들이 많이 있는데? 뭐지?
가까이 가서 보니 요즘에 세운 것이 많고
나주향교 건립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적비이거나 수리하거나
복원 하는데 도움을 주신분들 기념하기위한 것.
요런식으로 기념비가 대부분이더라.
향교로 들어 갈수 있나보다.
문이 열려 있는데. 그럼 실례합니다.
안녕 하세요를 연발하며 마당으로 들어 갔지.
근디 아무도 없어. 그냥 들어 가도 됬던거지.
일단 여느 향교처럼 입구로 들어 간것이
아니라 옆문으로 들어 간거지.
명륜당과 동재 서재 만 개방 하시나보다.
동재와 서재가 등지고 있네
그리고 마당은 왜이렇게 넓은 거임?
헬기장이라고 해도 여러대 앉을수 있는
그런 큰 헬기장이던데.
이긴 회랑 보이나 동재의 뒤 통수 인데
굉장히 큰 기숙사인거지.
굉장히 크다를 연발하고 있는데 관리사 아저씨
말씀 전국에서 제일 큰향교란다.
동재 와 서재 가 마주 보지 않고 등을
지고 있느 이유를 알겠네
작은 마당을 바라보고 있더구나.
나름 뭐 괸춘하군.... 상일방이라고 되이 있었던데
중이방도 있고 뭐여 했더니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기숙사 장면을 촬영 한곳이란다.
가만 성균관스캔들은 전주향교에서
촬영 됐다며 그럼 기숙사 장면만 요기서
대사례 장면은 영암향교 라던더 글고 아까 갔던
구림마을은 골목길 장면 촬영 한곳
내가 성균관 스캔들 여행을 하고 있었구나...
웁-----스
그래도 명륜당은 볼수 있었네.
대성전을 볼수 없어서 그러지....
골목을 나오는 길에 담장 너머 대성전 한컷 .
전주향교는 아기자기 한맛이 있다면
나주향교는 웅장함이 있던걸
그만큼 공부하던 학생이 많았다는 뜻인동시에
근방에 가까운 향교가 없었는지도
근데 영암향교도 있었는데 아님 말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주 목의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영암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나보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
다음 으로 통과 빛의 속도로 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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