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나주곰탕으로 배도 든든하게
체운후 관광해설사에게 물어서
동네를 지대로 둘러 보기 시작 했다.
곰탕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금성관이 있다고 한다.
뭐하는 곳이야 했더니 국가공인 여관이란다.
고려시대때 부터 전략적 요충지인 나주에
사신들과 공무를 보러간 관리들이
묵을수 있는 객관 또는 객사
나주시내에 그냥 있다.
입장료도 지키는 사람도 없이 그냥 우뚝
바깥 큰대문인 외삼문.
망화루 입니다.
어디나 외삼문 내삼문이 있어서
뭐여 했더니 세쪽의 문
즉 세칸의 문을 뜻한단다.
특히 가운데 문은 신도즉 귀신이 다니는
문으로 일반인은 안다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때 청사로 쓰면서 없어 진것을
2005년 복원 한거라고 한다. 우 쒸
외삼문을 통해 들어 가니
또다른 삼문이 나오은군.
당근 내삼문인줄 알았든데
내 삼문바로전의 문
중삼문 정도 될려나.
내삼문은 일제 강점기때
없어졌다는 표지석만 있더군.
굉장히 큰 여관인데.
드디어 나온 금성관의 전체적인 모습.
굉장히 웅장한 모습 이지
팔짝지붕에 날아 갈듯한 모양새
오른쪽이 동익헌 왼쪽이 서익헌
크기가 사뭇 다르지?
요거이 진정한 금성관의 모습
궁궐을 향해 망궐례을 올리고
사신영접 연회를 열었던곳
그냥 넓은 강당? 정도의 느낌
큰기둥이 있는 마루방.
벽오헌 정3품이상의 관리들만
묵을수 있는 방이란다.
여기서도 차별을 두었구나.
아궁이와 방2칸과 마루로 연결된
시원한 형태 방옆으로 벽오동 나무가
있어서 벽오헌 이라고 명 명 하였다는데....
어디?
마루 옆으로 서 있는 키큰 넘이
하나 있었네 요거이 벽오동 나무란다.
조선시대 때 부터 그럼 여기 있었다는 뜻.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벽오헌 마루에 앉아 있으니 너무 시원 한거야
양쪽으로 확확 불어 주는 바람이 엄청
저 기둥좀 봐라 큰나무 죽었구나.
관리가 잘되고 있는 듯
보통은 오르지마시오 인데
아무 표지가 없다.
그럼 과감하게 신발 벗고 잠시 취침 해주심.
뒷마당의 모습 와 왠지 시조 하나
지어야 할것 같은 분위기
글고 여기서 비오는날 김치 부침개
먹으면 죽이 겠는데.....
벽오헌과 금성관본채의 중간
통로 천정이 아주 멋짐.
반대변 하급관리들이 묵었다는 숙소쪽으로
걸아가는 길에 본 벽오헌의 뒷마루의 모습.
하급관리들이 묵는 곳은 이름도 없네
방도 작아 마루도 작고.....
벽오헌의 반정도의 크기
너무 하는거 아님?
금성관은 강물길을 따라 바다로
연결된 곳으로 백제때는 발라군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성군 조선시대 나주목으로
분류가 되어 있던 나주목관아의 가장 핵심 요충지였다.
전라남도의 실질적인 요충지이면서
오늘날의 전라도의 이름을 알린곳.
전라도가 전주의 전 나주의 나
그래서 전라도 인것만 봐도 호남의 요충지 인거지
그것 만큼 풍파도 많이 격었더라고
임진왜란때는 김천일이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가진곳.
그리고 명성황후가 시해 됐을때도 빈소를 마련
항일정신을 가졌던곳이기도해.
또한 1919년에는 일본인들이 청사로 쓴다고
정리하고 차지 했던 곳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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