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3일 포성정과 삼릉을 거처
점심도 하고 다음여행지로 출발
사람들이 정말 많이 가는
계림으로 가보기로 한다.
경주 처음 가는 사람들은 안암지나
대릉원에 주차를 하고 움직이는데
경주에 자주 와본나는 그렇게 하면 많이
걷기도 걷지만 차가 빠지는데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불법은 아니지만 주차장이
아닌곳에 살짝 주차를 하고 움직여 본다.
경주 향교 근처에 살짝 주차를 하고 계림과
월성 을 돌아서 박물관 월정료로 한바퀴
출발은 경주 향교 사람이 너무 많다 어마 어마한
사람들의 행렬 내가 가장 싫어 하는상태
경주 향교 앞으로 난 길로 살짝 들어 서면
계림 안쪽에 바로 보이는 내물왕릉
신라 17대 내물왕(재위 356∼402)의 무덤이다.
내물왕은 김씨 왕으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김씨 성에 의한 독점적
왕위계승을 이루었다.
마립간이란 왕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중국 전진(前秦)과의 외교관계를 통해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이 침입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주변을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담장터 흔적이 있어
일찍부터 특별히 보호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신라무덤의 내부형태는 거대한 규모의
돌무지덧널무덤이나, 이 무덤은 규모가 작고 둘레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내물왕릉을 황남대총(98호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라고 표지판에 빼곡히 적혀 있는 왕릉.....
내물왕릉에서 옆으로 걸어 나오면
바로 그곳이 계림이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始林)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태어날때 닭이 울었다고)
뒤로 계림(鷄林)이라 하였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알지는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계림은 신성스러운 곳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계림을 조금 지나쳐나오면
월성지구의 모습이 펼쳐진다.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저 나무들이 벚꽃으로
꽃이 필때오면 정말 좋은데 오늘은 때가 아닌거지
월성지구 앞쪽으로 첨성대 그뒤로
대릉원이 살짝 보인다.
나름 유채꽃이 많이 있어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한경치 해주시는 거지...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월성지구를 따라 가면 나오는 안압지는
사람이 너무 많아 통과
길끝에서 경주국립박물관에 도착.
현대의 기술로도 못만든다는 그 종이 여기 있다.
성덕대왕 신종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무게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2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현대에 들어서 새로 수리한다고 바꾼거인디
이종의 무게을 견디지 못한다고....
그려서 요런 형태로 보존 되고 있었다.
천년전의 기술을 못따라 가는 현대의 기술이라....
박물관을 거쳐 경주향교로 향하는길.
월정교가 드디어 복원이 되어 가는구나.
일정교 · 월정교는 『삼국사기』경덕왕조에
'경덕왕 19년...2월...궁의 남쪽
문천상에 춘양월정 두 다리를 놓았다.'
라는 기록에서 전하는 교량으로 판단되고 있다.
시대가 변천되면서 월정(月淨)교는
월정(月精)교로, 춘양교는 일정교, 효불효교,
칠성교 등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각각 해와 달의 정령을 상징하는
일정교와 월정교로 이름이
정해진 것으로 여겨지며,
효불효교나 칠성교는 조선시대에
민간의 전설이 결부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완성 되면 아주 멋진 풍광을
자랑할것 같지 ?
그러고 보면 경주 월성은 굉장히
큰 성이 었나 보다.
계림이 있고 첨성대가 있었고
정원이 안압지였으면 그옆으로 임해전지를
끼고 있었다니 굉장히 큰 성이었음을 알수있다.
2013년 4월 13일 오후 여행은
경주향교에서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구를 지나 경주박물관과
월정교를 넘어 다시 경주향교로
한바퀴 하는 걸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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