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여행/경상도여행

경주의 또다른 풍경 서출지와 유명하신 김춘추 무열왕을 만나러 가다

빨강돼지 2011. 7. 4. 20:57

 

2011년 7월 2일 오후 포석정과 지마왕릉

배리 삼릉을 거처 서출지까지 왔다.

경주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그런 천년의 도시인것 같다.

저번에는 왜 서출지를 못왔을까?

 일단 한번 보기로하고 가니 포석정의

반대편 즉 남산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있었네. 

직진 본능이 있는 내가 그냥 넘어 갔던 거였다.

 

 

 

뭐 특별한것이 있는것은 아니고 정자가

하나 있는 천년의 연못인거지...

정자는 조선시대쯤 지어진 거라고

해설사님이 말씀해 주시네

 

 

 

정자에서 바라보면 정말 멎질듯한

연못에 연꽃이 피어 오를

시간을 기다리며...

 

 

 

해설사님의 말씀으로는 7월에

 오면 아주 좋단다.  

연꽃이 아주 예쁘게 피고 밤에 조명도

있어서 볼만 하니 그때 다시 와서 보라시네..

 

 

 

서출지는 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이다.

남산 마을 한가운데에 삼층석탑

두 기가 있고 동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

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궁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

는 설명이 문화재청에 되어 있던데...

 

 

서출지를 나와서 시내를 가로 지르며

 바라본 벚나무 길은 정말 예술

조금더 봄에 와서 벚꽃구경을 했어야 하는 길...

 

 

 

시내를 가로질러 질러 무열왕릉에 도착했다. 

일단 저번에 와서 못보고간 곳만

찾아서 돌아 다니는 중이라 동선이

 굉장히 꼬임 그래도 좋다

 

 

 

국사 교과서에서 보던 그 거북을

보게 되는 구나...... 너 맞지?

반말하면 안될것 같은데 얘는

 천살이 넘은 거북님이 신거잔어....

 

 

 

요거이 그래도 국보 25호 라고

  굉장히 귀하신 몸인거다.

 

 

 

요비 때문에 무열왕릉인것을 알았다고

경주에 있는 왕릉중에 유일하게 왕릉의

 주인을 알수있는 무덤이라고 되어 있던데

그럼 내가본 무덤들은 다 이름없는거였단거야? 

사실 신라는 역사기록이 거의 없어서

 그냥 남산아래 어디에 장례지냈다라고 하면

거기가 그왕릉 이구나 하는거란다. 

헐   예를 들면 선덕여왕릉도

낭산아래 묻었다를 기초로 지금 남아있는곳에

 지명이 겹치므로 선덕여왕릉

인줄 안다는 그런뜻.

 

 

 

너무 소박하신 무덤이시던걸..... 

보기 좋게 휭  하니.....

이거이 왕릉 이라고 안했으면

절대 몰라볼 그런 왕릉. 

여타 내가 경주에서본 왕릉보다는

봉분의 크기는 큰데 뭔가 조금 없어

 보이는?  그런 왕릉이었다.

왠지 그리고 내가 가장 자신있게 이름을 댈수

있는 왕이라 조금더 기대를 했던것 인지도...

 

 

 

근디 왕릉 뒤쪽으로 왕릉이 여러기가

 또 있던데..... 뭐여 했더니

누구 묘인지 아무도 모른단다.  

식구들일수도 아님 왕비들이었을수도

있다는데....

 

 

 

금줄도 없이 그냥 동네

산책 코스 처럼 그냥있다. 

실제로 그 동네 어르신들은 무료통과

 여기를 운동하시는 곳으로 사용하시더라.

와----우   달밤에 왕릉에서 산책이라.........

 

 

 

윗 무덤에서 멀리 보이는 무열왕릉.....

 

무열 왕릉은 신라 제29대 무열왕

(재위 654∼661)의 무덤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661년 6월에 죽어,

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으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 동북쪽에는

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