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여행/강원도여행

율곡이이와 어머니 사임당이 자란곳 검은대나무의 집 오죽헌

빨강돼지 2013. 4. 22. 22:01


2013년 4월 21일 양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까지 내려 왔다.

강릉에서 뭘 볼까 하는생각에 지도를

보니 강릉의 중심에 오죽헌이 있었네

율곡이이와 사임당 신씨가 태어나고

 자란곳  오죽헌

그곳을 보자 보러 가자 고고 씽


 

 

원래 이랬는지 모르겠는데 입장료3천원을

 내고 백미터쯤 정돈된 정원을 지나서

가야만 오죽헌이 보인단다.  

 어렸을때 왔을때도 이랬었는지? 

 이러지는 않은것 같은데...

 

 

 

아 하  내가 원하던 곳이 나타났네 

 조기 조문으로 들어서면 드디어

오죽헌이 보이려나?

 

 

 

문을 하나 통과하니 발바닥 그림이

 있는 곳을 찾아서 한번 찍사

옛날 오천원권의 배경 장면이 여기라는데.

 

 

 

요런 발바닥그림을 찾으면 그곳에서는

구 5천원권의 그림이 있다고 한다.

그럼 나는 찍사를 해야 겠지.

 

 

 

요거이 맞나?  

구5천원권이 생각이 안나는데....

 

 

 

5천원권 그림가운데 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오죽헌이라는 집이 보인다.

오죽헌은 원래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인 이사온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 용인 이씨에게

상속되었다. 용인 이씨는 딸을

다섯 두었는데, 재산을 물려줄 때   

둘쨋딸 신사임당 의 아들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주었고,

넷째딸의 아들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다.

 외할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 했는데,

이것이 후에 집 이름이 되었다.


 

 

문성사.

문성사는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8월 인조대왕이

율곡 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문성사옆으로 난길을 따라 들어 가면

일반적인 한옥을 보는 듯한 풍경이 나타난다.

한옥의 안채 요기서 율곡 이이

 와 사임당이 살았던듯.

 

 

 

보통 보이는 한옥의 느낌의 집

사랑채정도의 느낌.

 

 

 

박에서 볼때는 무지하게 큰 집인듯한 모양새이지만

사실은 조선양반가옥의 일반적인느낌

 

 

 

마당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죽 검은대나무가 잘자라고 있더군

니가 오죽이구나.......

 

 

 

마당한가운데 신사임당이 앉아

계시더구만요.

경포대에도 앉아계시는듯 한데

요기도?    충    성......

 

사실 오죽헌은 난 율곡이이의 집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는 안더라.

사위로 사위로 대를 물린집으로

사임당신씨가 시집을 가서도 요집에

머물면서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다가 율곡이이도 낳고

생활한것이 이름이 난것이지 원래는

최응현의 집인데 딸만 있어서

사위 이사온에게 상속하였고

이사온역시 딸만있어서 다시 사위상속

용인이씨의 소유였고 그딸이 신사임당을

포함5명의 딸이 있었는데

둘째딸 신사임당의 아들인 율곡이이가

서울의 집과 땅을

넷째딸의 아들인 안동권씨 권처균에게

오죽헌이 상속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안쪽 박물관에는

용인이씨의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용인이씨와 신씨 권씨가 서로 소유권

주장을 했다는 설이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강릉사는 분의 말로 사실확인 안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