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는 왕릉이 있었다. 괘릉과 선덕여왕릉
경주 여행이 이제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자꾸만 늘어지는 것이
걷는 것이 귀찬아 지는 것이
서울이 그리운 시간이 왔나보다.
높은 곳도 싫어 평지만 찾게 되는 것이.
그래서 찾은 것이 왕릉이다.
경주는 왕릉의 도시라고 말해도
될 만큼 왕릉이 너무 많다.
길을 가다가도 릉이고 밭가운데도 릉이고
들에도 마을에도 그려서 발견한 것이 괘릉이다.
불국사에서 내려 와서 어정거리다
들어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괘릉
신라 38대 원성왕의 무덤이란다.
마을 입구에 덩그러니 있는 괘릉 2쌍의
사자와 1쌍의 무인과 문인이 지키고 있더라
무인의 모습은 곱슬머리의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
왕릉표지판에는 신라인들이 서역인과 무역을
많이해서 서역인의 모습을 조각했을거라고...
무서운 얼굴에 그래도 미소를 머금은 사자상.
근디 너 웃고 있는거는 맞는 거지?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왕릉을 지키고 있더라.
근데 멀리서 보니 미소는 맞는것 같은데
약간은 무서운데.....
신라시대의 가장 완성도가 돋보이는
왕릉의 형태라고 왕릉을 감싼
봉토주변에는 12지신상이
예술적으로 새겨져 있더라.
왕릉에서 바라본 왕릉을 지키는 사자상과
문인석 무인석 글고 표지석의 모습
이때 부터 왕릉에 필이 꽂혀서는
왕릉을 돌아 보게 되었다.
불국사와 괘릉을 보고난후 내려오는길
발견한 선덕여왕릉 표지판을 따라간길
지난밤에 내린 비로 길이 유실
한참을 해메고 난후 발견한 길
이산은 경주 낭산 높이 108m의 낮은산으로
신성한산으로 여겨 나무도 건들지 못하게 했단다.
길을 자꾸만 올라도 보이질 않고
소나무만이 가득 가득
신성한 기운이 가득가득
왕릉은 어딘거임? 짜릉이 몰려오는 거지.
특히나 내가 싫어 하는 계단이다.
계단이 끝나자마자 또 나타나는 소나무숲.
정말 어지럽게 헝클어진
미친년의 머리칼처럼 소나무가 많기도 하다.
미친년 머리같은 소나무의 바다를
지나 겨우 보이는 왕릉의 모습.
제가 갑니다요. 마 마 기다립시요.
드디어 온 선덕여왕릉.
죽음을 앞두고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는 여왕의 말씀에
신하들은 어딘지 몰라 다시 물으니 낭산
남쪽에 묻으라 하여서 여기에 묘를 만들었다고.
30여년이 흐른후 문무대왕이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한다.
불경에서 이르기를 사천왕천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니 여왕의 유언대로 도리천에 묻힌거다.
김춘주와 김유신을 거느리고
많은 일들을 하신 분의 무덤이
왠지 너무 소박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편견 때문일까?
그래도 후회는 없으시죠?
그리고 평안 하십니까?
보통은 부부가 합장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낭군의 이야기는 없는 거지요?
평안하게 지내십시요. 마마 다시 오지요.
내려 가는길에 바라본
어지러운 소나무숲의 모습.
어쩐지 약간무섭게 느껴지는것이
음산한 숲의 모습
그래도 니들이 고생이 많다.
여왕님 잘지키고 있거라..
원래는 기차길밑으로 난길로 올라갔어야
하지만 지난밤의 내린 장마비로인해서
사람길이 아니라 물길이 되어 버려서
기차길을 건너서 여왕님 알현을 하러갔다.